상업혁명이란?
순수 농업 기반 경제로부터 다양한 품목을 거래하는 교환 경제로 변화한 혁명
12세기경부터 유럽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이 혁명은 1500년 무렵 다음 2가지 이유로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를 중심으로 꽃피운다.
1. 오스만제국과의 전쟁
유럽국들과 오스만제국 간의 전쟁으로 육로를 통한 교역(주로 향신료, 사치품)이 막히자 해상 교역이 활성화되었다.
2. 공화정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는 공화정부를 채택한 곳이 많았다. 이는 로마의 공화정을 모형으로 한 형태였는데 주로 봉건 체계를 이루고 있던 당시 유럽국들에 비해 창의적이고 민심을 읽을 줄 알았기 때문에 강력한 상인 계급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능력을 중요시하는 정부 체제를 운영했다. 이들의 지도자는 여러 귀족 가문에서 선발된 인원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투표로 선발하였는데 여기서 선출된 대표를 도제Doge라고 불렀다. 도제Doge에게는 후계자 선정 권한이 없었으며, 가족의 정치 참여도 금지되었다. 또한 금융시장이 존재했으며, 선진적인 회계시스템이 도입되었고, 공정하게 계약을 집행하도록 강제하는 기구도 있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 중 피렌체의 '플로린 금화'는 신뢰성이 높아 전 세계 어디에서도 인정받는 화폐 역할을 했다. 도시국가들은 이 화폐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대출 제도와 공개적인 채권시장을 만들었다.
베네치아는 12세기 초에 5퍼센트 이자율을 보장하는 무기한 채권을 발행해서 정부가 만기 시의 재무 상태나 필요성에 따라 재발행(즉 차입)하거나 되사들였다. 채권을 보유한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정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채무불이행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상환이 보장되자 상인들은 채권을 신뢰하기 시작했고, 유통시장에서의 거래가 가능해지자 채권이 거의 현금 역할을 했다. 이렇게 적정한 이율에 돈을 빌릴 수 있는 능력은 베네치아의 강력한 힘이기도 했다.
1500년대까지 몇 번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도시 국가들은 결국 채무불이행을 선언했지만, 유동적인 채권시장은 훗날 네덜란드나 영국 등에서 크게 활성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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